커피학

커피의 역사 #2

안경낀감자킴 2023. 1. 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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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nterest

 

 

대한민국에서의 커피 역사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가 외국의 문물이 많이 들어오던 시기여서 이때 커피가 전파되었다는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다. 공식 문헌상으로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인하여 고정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를 권했다고 나타나 있다(바리스타 교육과정에도 간략하게 첨부되어있다). 이렇게 커피를 즐기게 된 고종은 환궁 후에도 커피를 즐겨 마시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무렵 서울 중구 정동에 손탁호텔이라는 곳이 세워졌는데 그곳에서는 커피하우스가 있었고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알려져 있다. 또 이 무렵 일본을 통해서도 커피가 전파되었는데 일본인들이 차린 양식 찻집에 의해서 커피가 전파되었다.


커피는 7세기 이전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지대에서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염소 목동이었던 칼디가 우연히 염소들이 먹던 열매를 발견했고 열매를 마을에 가져오는데, 피곤함을 덜어주는 커피의 효능을 마을의 종교수행자들을 돕기 위해 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곳에서부터 커피는 예멘과 이집트로 전파되었다. 예멘과 이집트에서는 커피가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15세기쯤에는 북아메리카 이미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10년 동안 중동을 여행한 독일 의사 '레오나르도 라우볼프'는 1538년에 커피에 대해 '잉크처럼 검은 음료, 다양한 병, 특히 위에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 이것의 섭취자들은 아침에 돌려쓰는 도자기전에서 한 잔씩 마시며 이것은 물과 분노라는 관목에서 나는 열매로 만들어짐"이라고 적었다. 술레이만 나아(프랑스에서는 솔리만 아가(Soliman Aga)로 부름)가 1669년 7월에 메메트 4세의 사절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4세를 접견할 때, 투르크식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선보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 권력층에게는 커피를 담당하는 하인을 고용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커피에 대한 처음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1511년에는 신경을 자극하는 성분 때문에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커피의 인기, 특히 그리스인 사이에서의 인기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오스만 튀르크 술탄 셀림 1세에 의해 커피 금지령이 폐지되었다. 카이로에서도 유사한 금지령이 1532년에 내려졌고, 커피숍과 커피 창고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후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커피 가게인 '카페 키바 한(Cafe Kiva Han)'이 들어서게 된다.

오스만제국이 오스트리아 빈을 침공하면서부터 커피는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퍼졌는데 전쟁 중에 터키에 머물고 있던 공직자 '프란츠 콜스 키츠키'는 검은빛의 열매를 발견해 들여오게 됐고 1683년에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지금처럼 커피에 우유를 넣거나 달게 먹는 방식은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많이 알려진 비엔나커피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되었다). 후에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유럽으로 커피를 처음 대량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상인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자와섬 지역에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을 지으면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런던에서는 오스트리아보다도 먼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런던 사람들에게 커피숍은 Penny Universities라 불리면서 싼값에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인들 사이에서 커피의 인기가 계속 증대됨에 따라 1690년대부터는 미국에도 본격적인 커피 전문점 붐이 일어난다. 뉴욕 등지에서 시작됐으며 1700년이 넘어가면서부터 뉴욕시에서는 맥주보다 커피가 아침 음료로 선호 받게 된다.

사실 커피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식민지 이주자들은 커피보다 술을 더 즐겨 마셨기 때문에 커피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독립전쟁 중 커피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여, 그러지 않아도 영국 상인의 부재로 공급이 줄어든 커피는 값이 크게 뛰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커피 산업 전반에 급진적인 발전이 나타난다. 1900년, 언덕 브라더스 사가 진공 포장된 커피 제조에 성공, 이듬해에는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이던 사투리 카터가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했다. 1938년도에는 네슬레사 소속 과학자들이 에스프레소 커피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아킬레스 가기아(Achilles Gallia)가 에스프레소 제조 기계 발명에 성공하였다(지금의 커피머신).


그 후 일제강점기 시절 근대적 의미의 다방이 많이 생겨 일본인들이 주로 찾고 몇몇 지식인들과 문학가들이 폭넓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방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하여 대부분 문을 닫았다가 해방과 동시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군용 식량에 포함되어있던 인스턴트 커피가 우리나라 커피 문화 발전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 후 커피믹스가 개발되고, 길거리에 흔히 보였던 자판기가 등장하는 등 커피의 대중화를 이루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등장하고 1999년에는 스타벅스(#1 참조)가 국내에 진출하여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연 것을 기점으로 국내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 이후 더 많은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면서 커피빈, 파스구찌, 이디야, 비엔나커피 하우스 등의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이루게 되었다. 폭발적인 커피 전문점의 증가로, 현재 서울은 전 세계 도시 중에서 최고의 밀집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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